무함마드
이슬람교의 창시자이다. 이슬람교는 다섯 계율을 강조한다. 예배를 중시하는 살라트, 구제 행위를 강조하는 자카트, 성지 순례를 강조하는 핫즈, 라마단 기간의 금식도 중요하다. 라마단은 이슬람 역법상 더운 달을 의미하는 9월에 진행되는데, 이달은 천사 가브리엘이 무함마드에게 코란을 가르친 신성한 달이다. 마지막으로 알라만이 유일한 신이고 무함마드가 예언자임을 고백해야 하는 샤하다 도 중요한 계율이다. 조로아스터교, 유대교, 크리스트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독자적인 모습이 강하다.
무함마드(570-632)의 인생은 여타의 종교 창시자들과 큰 차이를 보인다. 570년하심 가문의 일족으로 태어났으며 삼촌 밑에서 상인으로 일했다. 25세에 부유한 과부이자 주인이던 연상의 하디자와 결혼했고, 610년경 처음으로 알라의 계시를 받는다. 일부 추종자를 얻었지만 그는 메카에서 외톨이였다. 쿠라이시족 같은 주류 집단에서 그를 배척했기 때문이다. 당시 아라비아 일대에서는 다신교가 유행했으며, 신전과 부족은 경제적 이해관계로 뭉쳐있었다. 오래된 부족의 문화, 여러씨족간의 위계 등 견고한 전통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무함마드의 예언은 이런 것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었다.
무함마드는 메카가 아닌 메디나에서 기회를 얻었다. 당시 메디나에서는 유력부족인 아우스족과 하즈라즈족의 갈등이 심각했고, 그로 인해 도시 전체가 위기에 처했다. 무함마드는 메디나에서 사람들을 개종시키는데 성공했고, 620년 두 부족의 대표 12명이 무함마드를 예언자로 인정하며 충성을 맹세했다. 결국 622년 75명의 메디나 대표단의 보증과 함께 무함마드는 메디나에 정착한다. 이를 헤지라라고 부르는데, 622년은 이슬람력 원년이다.
무함마드는 자신이 성서의 예언자들을 계승했다고 주장했고, 유일신, 심판,부활 등을 선포했다. 동시에 그는 유대교와 크리스트교도를 부정했다. 성서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알라에 귀의한 하니프(참된 종교의 신도를 의미하는 용어)였고, 그가 카바신전을 세운 아랍인의 시조이기 때문에 유대교나 크리스트교가 틀렸다고 주장했다. 메디나에서 권력을 장악한 무함마드는 메카와의 싸움에 승리하면서 아라비아반도에 살던 수많은 부족과 상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630년 메카를 정복했고, 사망 전까지 아라비아반도 전체를 통합했다. 이후 그의 후계자 칼리프들에 의해 이슬람은 제국으로 발돋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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